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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첫 군종, 최익철 신부를 만나다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6.18  조회 914     
한국교회 첫 군종, 최익철 신부를 만나다
“고난의 종군… 천막 미사는 유일한 기쁨”
발행일 : 2015-06-21 [제2949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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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철 신부는 군종신부들에게 복무 후 소속 교구로 돌아가서도
 군사목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천막 안에서라도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한국교회 최초의 군종신부 11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최익철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92). 군사목 역사의 산증인인 최 신부가 군문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짙은 포연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던 1951년 2월 28일이었다.

'군종신부'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 그는 서울대교구 신부 8명, 전주교구 신부 3명과 '무보수 촉탁 문관'이라는 이름으로 계급도 없이 군사목에 발을 디뎠다.

“부대를 따라 이동하며 신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고난의 시절이었습니다.”

6월 10일 오후 서울 방이동 자택에서 만난 최 신부는 64년 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군종신부로 입대하는 과정부터가 험난했다. 1950년 11월 2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황해도 사리원본당 보좌로 발령을 받았다. 하루라도 빨리 고향이 있는 북녘 땅으로 돌아가 신자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사리원본당 신자들이 남쪽으로 피란을 왔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본당에는 부임도 해보지 못하고 다른 신부들과 부산으로 피란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서울대목구장 노기남 주교는 부산에 모여 있던 젊은 신부들에게 군사목에 나서라는 소임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군종신부로 처음 배치받은 곳이 강원도 주문진의 불타버린 학교였다. 군종신부라고는 하지만 미사나 성사 집행은 꿈도 꾸기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사제 서품 후 처음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이라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장병들을 쫓아다니며 신자를 찾아 나섰지만 기대는 매번 어긋났다. 

부대 이동에 따라 주문진에서 속초와 간성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릉으로 내려왔을 때야 군종신부로서 잊히지 않는 체험을 하게 된다. 1951년 어느 날 한 군인이 찾아와 사형판결을 받고 강릉경찰서에 수감돼 있는 병사를 만나볼 것을 요청해 온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합니다. 잔뜩 겁에 질려있는 병사는 부대를 무단이탈한 죄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강릉경찰서로 찾아가 병사를 위로했다. 사형 집행장까지 동행해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전쟁통에 그에게 두 번째 소임이 주어졌다. 이번에는 전투로 상처를 입은 상이군인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1952년 상이군인들로 넘쳐나는 부산 제31정양원에 부임했다. 건물도 없이 달랑 천막만 쳐놓은 열악한 시설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최 신부에게는 이전까지 종군하던 그 어디보다 나은 곳으로 보였다. 

“비록 혼자서일지라도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지금도 살아계신 권희집(사도 요한·91) 수녀님 등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과 환자들 가운데서 고생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조금이라도 군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섰다. 그런 활동 덕에 1952년에는 노기남 주교 주례로 장병들과 환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줄 수 있었다.

현재 90명이 넘는 사제가 군종교구에서 사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최 신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 복무 후 원 소속 교구로 돌아가더라도 군사목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만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기는 노사제의 입가에 미소가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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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철 신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부산 제31정양원에서 군종신부로 사목하던 1952년, 노기남 주교(앞줄 가운데)가 제31정양원을 방문해 견진성사를 집전한 후 찍은 기념사진. 뒷 줄 오른쪽 첫 번째는 성가소비녀회 권희집 수녀로 최 신부의 군사목을 도왔다. 
(성가소비녀회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출처:가톨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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