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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사순을 묵상하다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3.07  조회 1192     

피에타, 사순을 묵상하다

                               
어머니는 아픔을 삭이고 끌어안는다
아들의 구멍 뚫린 손, 식어가는 몸을
발행일 : 2015-03-08 [제2934호, 9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숨을 거두실 때까지 극심한 고통을 견뎌냈을 어머니 마리아다. 죽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피에타(Pieta). 피에타는 단순한 상실의 고통을 넘어 오늘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게 하는 보편적 공감의 대상이 된다. 사순시기, 홍희기 큐레이터(갤러리1898)가 꼽은 피에타들을 바라보며 작품에 담긴 구원과 봉헌, 사랑의 의미를 찾아본다.

피에타의 기원과 의미

성경에서 예수가 마리아의 무릎에서 숨을 거뒀다는 구체적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피에타가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작품주제로 자주 쓰였던 이유는 예수의 수난을 구체적으로 묵상하기 위해 후대 사람들이 추측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가장 극심한 고통인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아픔'을 그려낸 것이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연민'과 '경건한 마음'을 뜻한다. 작품은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무릎 위에 얹어 어깨를 받치고 가슴에 안아 비탄에 잠긴 구도를 보여준다.

홍희기 큐레이터는 “피에타의 성모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랑과 용서의 표상이자 신앙의 모범이라는 상징성을 지녔고, 하느님과 연결되는 수직적 구도를 취한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예수는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구원자의 희생을 상징하며, 십자가의 재물로 시신이 돼 누워있는 수평 구도를 지닌다.

따라서 피에타는 예수의 억울한 죽음마저도 평화로 인식되는 마리아의 순종과 평화를 의미한다. 사순시기, 우리가 피에타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러한 의미들에 있다.

피에타는 원래 1290년경부터 1300년대 초반까지 독일에서 '베스퍼빌드(저녁에 기도하는 상)'로 유행하던 미술사적 주제였다. 대부분 교회의 주문제작에 의해 이뤄졌던 이 작품은 1400년 이후 유럽 전역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14~15세기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베스퍼빌드가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이탈리아에서 '피에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피에타를 떠올리면 우리는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 놓인 미켈란젤로(1475~1564)의 피에타를 떠올린다. 15세기 말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라는 주제를 선택, 피에타를 종교예술의 대표적 도상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그는 전 생애를 통해 피에타를 제작했고, 피에타는 그에게 세속적 명성을 안겨주었으며 그가 최후까지 작업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총 4개의 피에타를 남겼는데, 성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 피렌체 두오모성당의 피에타, 산타크로체성당의 팔레스티나 피에타, 스포르체스코성에 있는 론다니니 피에타 등이다.

피라미드형 구도로 정점에 성모 마리아의 머리가 위치하는 성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이후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접어든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고도 불리는 '피렌체의 피에타'를 만든다.

예수의 왼팔에서 마리아는 십자가의 고통을 나누려는 듯 늘어진 예수의 몸을 받쳐 들고 있으며, 예수의 오른팔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부축하고 있다.

팔레스티나 피에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커다란 몸을 마리아가 껴안고 있어 극적인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고,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마리아 혼자서 그리스도를 앞으로 떠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 성베드로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마리아의 고통을 극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피에타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힌다.
 ▲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두오모성당 피에타.


다양한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조각 외에도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1430~1516)의 회화로 그려진 피에타 또한 유명하다. 15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서 두 눈을 감고 있는 예수의 모습은 고통을 완성한 자의 표정이다. 아들과 얼굴을 맞댄 마리아의 표정에는 침통함이 역력하고 그의 손은 예수의 손을 잡고 있다. 손에는 상처가 뚜렷하다.
 ▲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19세기 고흐(1853~1890)가 남긴 피에타도 있다. 낭만주의의 거장 들라크루아의 피에타를 본뜬 이 작품에는 죽음과 고통이 깊게 배어있는, 자신을 꼭 빼닮은 예수의 모습이 있다.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거칠고 투박한 손은 삶의 고난을 나타낸다.
 ▲ 빈센트 반 고흐의 피에타(외젠 들라크루아 작품 모작), 1889.


20세기 유명화가 피카소(1881~1973) 또한 피에타를 남겼다. 에스파냐 파시스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그린 작품 '게르니카'에는 아들을 안은 채 고통으로 울부짖는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있다. 울부짖는 여인은 다시 말에 의해 짓밟히는데 당시 전쟁의 참상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피에타는 시대를 초월해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에 주요한 주제로 등장해왔으며, 작품들마다 그려진 마리아의 애통함과 절절한 부르짖음에는 변함이 없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표현된 피에타, 1937.


한국의 피에타

우리나라에서 십자가의 길에 속하지 않은 단독 조각상으로 설치된 최초 한국작가의 피에타로는 김세중(프란치스코, 1928~1986) 작가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그의 피에타는 초자연의 이미지와 피에타상의 여러 속성을 통해 그 자체가 회개이자 구원이고 천상의 공간임을 이야기한다. 또 깊은 영적 연민과 함께 육체의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놓인 평화를 찾아볼 수 있다.

이순석(바오로, 1905~1986) 작가의 피에타는 작가 특유의 부드러움과 돌의 재질을 살렸다. 두터운 받침대에 장식적 문양이 있고, 예수와 성모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등장, 예수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의 피에타의 돌덩어리는 마리아와 요한, 막달라 마리아를 화강암에 새긴 것으로 인물들이 하나로 뭉쳐져 길게 아래로 늘어진 선으로 묘사된다.

십자가의 길을 포함, 피에타를 가장 많이 만든 작가는 이춘만(크리스티나)으로 꼽힌다. 그의 피에타 성모는 사랑의 상징이며, 둥근 원으로 표현한 후광은 거룩한 신성과 영원한 구원, 사랑, 영광 등을 의미한다. 그는 피에타를 통해 수직과 수평의 십자가를 연상하도록 만든다.
 ▲ 이춘만의 피에타, 2005.


독일의 신학자 테오 순더마이어는 그의 저서 「미술과 신학」에서 수평적, 수직적 연장을 통해 무한한 공간과 유한한 공간을 만들어 그만의 우주적인 공간을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또 큰 두 손은 축복하는 손이며, 축복은 구멍 뚫린 그 손에서 나온다고 했다. 구멍 뚫린 예수의 손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사순시기, 구원과 사랑의 상징이자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피에타에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 성 라자로 마을에 있는 고 김세중 작가의 피에타, 1980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출처 :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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