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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선교
    부산평화방송  작성일 2015.02.23  조회 1426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1>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선교
2015. 02. 15발행 [1302호]


복음 선포자, 용어와 상황 한계 극복하고,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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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폭우 속에서도 참가 청년을 꼭 끌어안고 있다. 【CNS】


인간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교황은 이와 같은 여정 속에서 선교를 위해 뛰어든 사목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와 덕목에 대해 일러준다. 먼저 어느 시대이든지, 그 시대 상황 속에서 계시된 말씀을 해석하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40항). 또한 그 시대에 맞는 진리의 표현 방식을 습득해야 한다(40항). 그리고 부족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사랑이 담긴 위안과 격려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전달해 주는 자비의 사목자가 되어야 한다(44항).


복음을 더 정확히 전하기 위한 수단


학문의 발전은 진리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해준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성경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의 책무는 교회의 판단이 더욱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회과학' 역시 교회를 위해 봉사함을 언급하기도 했다. “교회는 교도권의 직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정보를 얻기 위해, 사회과학의 공헌에 관심을 갖습니다”(40항).


철학과 신학과 사목의 다양한 사상의 발전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이 모든 학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한 모든 것이 한없이 풍요로운 하느님 말씀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40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내용 속에는 이유와 논증의 명백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들이 있다. 교황은 “어떤 모호함으로 표현되는 신앙의 십자가”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이것 때문에 신앙인의 믿음의 동의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노의 말대로, 계시된 진리를 알기 위해서 믿을 때, 신앙의 동의는 언젠가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 선포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믿음의 동의를 드러내야 한다. 비신앙인들과의 친교 그리고 그들 안에서의 사랑과 증언의 삶을 통해, 그들도 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있도록 일깨워야 하는 것이다(42항).


또한 현대 사회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에 발맞추어 '진리의 표현 방법'을 계속해서 탐구해야 한다. 진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나, 그 표현 방법과 용어는 그 시대의 문화 속에서 재해석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문화적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과거의 표현에 집착한다면, 그 본질은 왜곡되고 복음의 아름다움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게 된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을 인용하며 이렇게 강조한다. “진리의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변함없는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려면, 이러한 표현 형태들이 반드시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41항).


고해소, 치유의 장이 돼야


교황은 고해실은 고문실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사제들이 자비의 사목자가 되길 당부했다. 죄악에 떨어지는 인간 존재의 부족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자비와 인내를 갖고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예수회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해 신부는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도 느슨한 사람이 될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 이 두 형태의 고해 신부 모두 자비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구도 참된 의미에서 이 고백자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사제는 그 책무를 계명에 넘기며 자신의 손을 씻은 사람입니다. 방임적 사제는 단순히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이와 비슷하게 처신하며 자신의 손을 씻은 사람입니다. 고백자들을 그렇게 홀로 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 속에서 용기를 갖고 내딛는 사람들의 작은 발걸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마다의 잘못과 실패를 넘어 모든 사람 안에서 신비롭게 움직인다(44항). 자비의 사목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신발이 더럽혀지더라도

이렇게 복음화의 임무는 용어와 상황의 한계 속에서 수행된다. 선포자들은 이러한 한계들을 잘 알고 스스로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고…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1코린 9,22) 되어야 한다. 결코 자기 자신 안에 갇혀서도 안 된다. 거리의 진흙탕에 신발이 더럽혀지더라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45항).



홍기선 신부.



출처: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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