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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집] "예수님 수난 묵상하며 고통 이겨냈죠"
    평화신문  작성일 2014.03.05  조회 1694     

[사순 특집] "예수님 수난 묵상하며 고통 이겨냈죠"

사순절에 만난 사람 / 한센인 설움 딛고 일어선 하헌석씨



스무살에 '한센병' 진단받고 1978년 성심원으로 이주


매일 미사ㆍ묵주기도 바치며 새로운 희망과 용기 얻어


2008년 사회로 나와 이웃과 함께 생활하며 부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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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센병의 고통을 이겨내고 자유롭고 기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하헌석씨. 얼굴근육이 위축돼
       웃어도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이지혜 기자

"주님 때문에 제가 용감해졌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팔다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린 예수님도 있는데, 예수님의 고통에 비하면 제 고통은 견딜만한 것이지요."

 한평생 한센인이라는 설움을 딛고 살아온 하헌석(모세, 65)씨는 "나보다 더 고통받으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두려움 없이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절단해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하씨 어깨너머로 시 한 편이 들어온다.

 "수많은 세월과 마음의 고통을 겪으니/마음은 잔잔한 열정으로 꽃을 피우네!//마음의 여정은 한없는 사연으로 이루어져/그 사연들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허공 속에 맴돌다가 어디로 사라지누나!//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는 오는 법(중략)//나의 인생이란 처참하게 짓밟힌 잡초지만/오늘은 새순으로 돋아나네!('나의 길' 중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러 가다가 논두렁에서 넘어졌는데 팔 감각이 이상한 게 한센병의 첫 증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왼쪽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떨리기 시작했다. 하씨는 부모와 함께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가 침도 맞고,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봤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이를 안 동네 사람들은 하씨에게 "문둥병 든 게 아니냐"면서 보건소에 신고했고, 스무 살이 돼서야 하씨는 한센병을 진단받았다.

 가족, 동네 사람들과 격리된 채 생활해야 했던 하씨는 대구의 가톨릭피부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한센인들의 고름을 짜고 상처를 싸매주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을 보면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어요. 가족도 멀리 하는데…."

 하씨는 1978년 경남 산청에 있는 한센인 마을 '성심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는 성심원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한센인에 대한 차가운 냉대와 차별은 여전했다. 한 번은 산청읍으로 보신탕을 먹으러 나갔다가 하씨를 훑어본 주인이 "보신탕을 안 판다"며 문을 닫은 일도 있다. 하씨는 스스로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거리에 사람들이 있으면 빙 둘러서 갔다.

 "마음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그는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평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보기 싫었던 자신의 모습도 받아들이게 됐고, 겉모습만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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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알을 굴리는 하헌석씨의 의수.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받으셨는데 내 처지도 예수님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는데 두려울 게 없더라고요."

 하씨는 자신의 어려움보다 타인의 어려움을 보는 눈이 생겼다. 10년간 성심원 어르신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성심원에서 30년 8개월의 생활을 뒤로하고, 그는 2008년 사회로 나왔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이삿날, 그도 한 맺힌 눈물을 쏟았다. 그와 함께 살던 한센인 가족들도 우산을 쓰고 나와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하씨는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따가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내 안으로 숨어들어 살았지만, 주님을 알고 나서는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예요. 어느 낯선 사람이 저를 피하거나 꺼려도 다시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경북 왜관에서 장애인수당으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고 밝게 생활한다. 간혹 밥을 못 먹고 굶고 있는 이들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고 빵이라도 쥐여준다.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원으로 매달 성심원에 정기후원금도 내고 있다.

 "내 곁에 항상 주님이 있다고 생각하니 외롭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위안을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부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며 "여생을 다 보내고 예수님을 만나면 당신 때문에 고통을 잘 이겨내며 살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씨는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서 질병이건 장애건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인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면서 "차가운 시선보다 용기와 힘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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